#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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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의 차가운 바람이 볼끝을 스치고 있었다. 이번 겨울은 많이 추울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따뜻한 햇살에 기분이 좋았는데, 이제는 차가운 바람에 긴장하게 된다. 이젠 하복을 입기엔 날이 너무 추워져 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지각이 용서되는건 아니다. 난 추위에 약하니까, 하며 정당화를 시켜볼 수 밖에.
하지만 지각생이 나뿐은 아니었다. 저 멀리 횡단보도 너머에 그녀가 있었다. 이렇게 반가울수가.
난 그녀의 이름을 외치며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매정하게도 나를 슬적 보다니, 고개를 돌리곤 갈 길을 가버린다. 그런 모습이 어찌나 어울리는지. 나는 조금 샘이나, 신호가 바뀌기도 전에 후다닥 그녀에게 달려갔다.
"야! 뭐가 이렇게 매정하냐? 좀 기달려주면 안돼?"
조금 헥헥거리며 그녀에게 말을 걸자, 돌아본 얼굴은 의외로.
"너 왜 신호도 안기다리냐?"
하며 짜증이 베인듯한.
"아니, 니가 그냥 가니까"
"차에라도 치이면 어쩔려고 했어?"
"어, 응? 아니 차가 안오니까..."
"병신아. 뒤 봐봐 차 쌩쌩 지나다니는거 안보여?"
그녀가 이렇게 얼굴근육을 요리 바꾸고 조리 바꾸고 하는 모습은 처음봤다. 가끔 순찰차 뒤에서도 무단횡단 한적이 있는데 이게 그렇게나 큰 죄였나.
"하여튼 존나, 생각이 없어 너."
짜증을 획 내곤, 성큼성큼 학교로 걸어간다. 나는 벙쪄서는 그녀의 뒷모습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혹시 그날인가. 아니지, 그날이라고 해도... 흠, 이것 참. 나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미술실 밖에선 짜증을 낼때도 있나? 그게 아니면... 혹시.
나는 베시시 웃으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분이 들떠 그녀의 뒤를 좇아 뛰어갔다. 지각은 지각이지만 더 늦으면 벌금이 더 늘어날지도 모르니깐... 하고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면서.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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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그녀"
내앞에 걸려있는 그녀의 그림. 미술실 한켠에서 울고있는 행복한 여인.
"어딜봐서 행복하다는건지."
사실 미술실에 혼자 있는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녀가 없는 미술실은, 사실 너무도 슬프다. 이곳엔 그녀의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 담겨있는곳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녀의 슬픔, 그녀의 분노, 그녀의...
눈물.
'행복한 그녀'는 몹시나 서럽게 울고있는 한 여인의 그림이었다. 우는것을 숨기지도, 참지도 않고 펑펑 울고있었다. 그녀는 울고싶은것일까. 누구도 보지 않는곳에서도 울지 못하는것일까. 아니면,
"나때문인...가?"
어쩌면 난 그녀의 공간에 멋대로 침입해버린게 아닐까. 유일하게 편안하던 이 미술실을... 흐음. 이 그림은 내가 미술실에 들이닥치고 난 이후에 그린 그림이니 충분히 그럴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조금은 이기적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녀를 포기할 마음은 없다. 아니... 오히려 전보다 편안하게 해주고싶다. 그녀의 가면을 벗겨버리고 싶었다. 적어도 내 앞에선 펑펑 울수 있는 그녀라면, 지금보단 나은게 아닐까.
고요한 침묵속에 시곗바늘과 행복한 그 여인만이 울고 있었다.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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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땡땡이 치는거야?"
"뭐야, 그러는 넌. 넌 왜 맨날 수업 안듣고 그림만 그려? 대회 기간도 아닌데."
"난... 그냥, 그림그리고 싶어서. 나 상도 자주 타니까 뭐라고 안그래."
"못되쳐먹으셨네..."
미술실의 창문으로 들어오는 초여름의 시원한 바람은 날 행복하게 만들었다. 바람 때문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하여튼. 매일 매일 담탱이한테 혼날껄 알고도 이곳에 온다. 난 그녀처럼 면죄부같은게 없다. 그래도 나도모르게 자꾸만 이곳에 오게된다.
"너 그런데 왜 맨날 이렇게 침울한 그림만 그려?"
그녀의 그림은 항상 어두운 그림 뿐이었다. 무언가 끔찍한, 징그럽고 침울하고.
"그냥, 내기분 그대로 그리는거야. 슬프고 짜증나고 화나고... 그런다고 징징대면 찌질이 같잖아."
"이건 예술이고?"
"응, 내 스트레스가 나한테 상을 주더라. 돈도 주고."
"뭐 이렇게 매일매일 기분이 그러냐?"
"몰라."
그녀는 절대로 남 앞에서 화내지 않았다. 짜증내지도 않았고 초라해지지도 않았다. 걔는 그런 애였다. 너무 성숙해버린 고등학생 소녀. 모든걸 억누르고 웃는 소녀. 그래도 단 한가지 탈출로를 알고있는, 그런.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반해버린걸까.
"근데, 너 왜 자꾸 땡땡이 치냐니까?"
나는 작게 웃었다.
바람이 시원하다. 햇살이 따스하다. 세상이 아름답다. 그녀도. 나는 또다시 작게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것보다 점심시간 다되간다. 밥먹으러 가자."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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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고 있다. 유리창에 비친 얼굴때문에 마치 내가 비를 맞고 있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비를 맞고싶은지도 모른다. 난 아무래도 솔직하지 못하니까. 빗물때문에 점점 더 유리창이 거울같이 느껴지는게 싫어서 고개를 돌렸다. 빗소리만이 내 귀를 울리고 있다. 내 마음을 울리는건 빗소리가 아니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빗소리마저 듣기 싫어 창문에서 멀리 떨어진 소파에 몸을 눕혔다. 바라보고 있는 천장엔 그저 파리 한마리가 윙윙 날아다닐 뿐이었다. 눈을 감고싶지 않았다. 눈이 따가웠지만, 눈을 감아버리면 마음까지 따가워져 버릴까 무서웠다. 나도 모르게 그만 눈을 감아버렸는데, 참고있던 슬픔이 터져나와 버렸다. 그녀를 보고 말았다.
어째서 죽어버린거야, 나 아직 너한테 좋아한단 말도 못했는데.